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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테일러 | 외국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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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이름 : 엘리자베스 테일러
생년월일 : 1932년 2월27일
출생지 : 영국 잉글랜드 런던
학력 :
직업 : 배우
데뷔작 : There's One Born Every Minute
최근수상경력 : 제4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세실 B. 데밀 상 (1985)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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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작
녹원의 천사 (National Velvet, 1944)
아버지의 인생 (Life With Father, 1947)
젊은이의 양지 (A Place in the Sun, 1951)
아이반호 (Ivanhoe)
내가 마지막 본 파리 (The Last Time I Saw Paris, 1954)
자이언트 (Giant, 1956)
뜨거운 양철 지붕위의 고양이 (Cat on a Hot Tin Roof, 1958)
지난 여름 갑자기 (Suddenly, Last Summer, 1959)
버터필드 8 (Butterfield 8, 1960)
클레오파트라 (Cleopatra, 1963)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1966)
파우스트 (Doctor Faustus, 1968)
비밀
파랑새
거울 살인 사건 (The Mirror Crack'd, 1980)
고독한 중년 (Between Friends, 1983)
춤추는 헐리웃 (Malice In Wonder Land, 1985)
토스카니니 (Young Toscanini, 1988)
문워커 (Moonwalker, 1988)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 (The Flinstone, 1994)
헐리우드가 낳은 최고의 미인이자 아름다움의 대명사 '엘리자베스 테일러 (Elizabeth Taylor)'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40년대부터 지금까지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할리우드 최고 스타이다. 영국 출신이지만 일찌감치 할리우드에 진출해 아역 배우로 이름을 날리던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타고난 아름다움으로 할리우드를 정복했고, 몽고메리 클리프트<젊은이의 양지 1951>, 제임스 딘<자이언트 1956>, 리처드 버튼<클레오파트라 1963, 말괄량이 길들이기 1967>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과 출연하며 많은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1960년 <버터필드>와 1966년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여덟 번의 결혼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12살때 할리우드에서 아역배우로 출발한 그녀는 아역스타는 나이를 먹으면 인기를 잃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이중 대표작이 20세기 폭스의 <클레오파트라> 헐리웃의 내노라 하는 미녀들인 킴 노박, 소피아 로렌 등을 제치고 "세기의 미인 클레오 파트라"역에 캐스팅된 테일러는 당시로선 천문학적인 액수인 933만 달러를 출연료로 받았다. 5년에 걸쳐 제작된 ‘클레오파트라’는 비난과 찬사를 동시에 받았고,테일러는 이 영화 촬영중 ‘버터필드 8’로첫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67년 테일러에게 두번째 아카데미상을 안겨 준 작품은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라’ 미의 대명사로 꼽혔던 테일러가 마스카라가 번진 얼굴로 열연을 펼쳤던 작품이다. 이처럼 화려한 영화 경력 못지 않게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화려한 사생활.
8번의 결혼과 이혼. 30번이 넘는 크고 작은 수술.
만성 다이어트 중독증 환자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이다
테일러는 50년 호텔 거부 콘래드 닉키 힐튼 주니어.
52년 영국 배우 마이클 와일딩.
57년 영화 제작자 마이클 토드와 결혼과 이혼을 거듭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테일러를 잘 이해했던 리처드 버튼과 결혼생활은 그중 가장 길게 지속했다. 이들은 64년 결혼해 74년 이혼했다. 75년 재혼을 하지만 곧 처음의 선택이 옳았음을 깨달으며 이혼했고, 91년. 여덟 번째 남편 래리 포텐스키와 결혼한 테일러는 96년까지 8번째 결혼 생활을 유지하지만 끝내 이혼했다.
세번째 남편 토드가 죽은 뒤 테일러는 토드의 절친한 친구이자 자신의 친구 데비 레널즈의 남편이었던 에디 피셔와 염문을 일으켰으며 당시 한 기자가 세간의 비판을 전하자 “날더러 어쩌라고? 그럼 혼자 자란 말야?”라고 응수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어째든 화려한 남성편력외에도 스크린에서 그녀의 아름다움은 찬란하게 빛났다. 영화 <젊은이의 양지> <자이언트> <클레오 파트라>에서 그녀의 고혹적인 눈빛은 관객들의 혼을 빨아들였다. 그녀는 "미(美) 의 상징"이었다. 오드리 헵번의 우아함, 그레타 가보르의 운둔자의 신비, 그레이스 켈리의 차가운 열정. 그녀는 그 모든 것이었다. 그녀의 삶은 영화와 동일시 된다.
하지만 숨가쁜 결혼 행진곡 속에서 이제는 늙고뚱뚱한 할머니로 변해버린 테일러. 때로는 요부로 어느 순간은 요조숙녀로 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 제 75회 아카데미시상식 참석을 끝으로 공식적인 연예활동을 마감한 그녀는 "연기보다 지금은 사회활동이 더 중요한다"는 말을 남기고 에이즈로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천사의 이미지, 지나간 영광을 되씹으며 눈물짓는 퇴락한 여배우가 아니라 열심히 사회 봉사활동을 하는 사회사업가로서의 이미지를 굳혀가고 있다. 늙었지만 여전히 그녀는 최고의 미녀스타로 여전히 세인들의 가슴에 남아있다.